지난 8월 17~18일, 거행된 후기 입학식 및 OT를 진행하면서 본교 전통의식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원우님이 계신 것 같아, 참고 될 만한 글을 올립니다.

 

‘마셔도 고대답게 막걸리를 마셔라’로 시작하는 막걸리 찬가에 맞추어 하늘 향해 포효하는 새끼 호랑이들의 FM이 곳곳에서 들리고 사발에 가득 담은 막걸리를 마시는 어설픈 광기를 보게 됩니다.

 

FM과 사발식 그리고 막걸리찬가의 세트메뉴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신입생 신고식은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고려대만의 의식이며, 누구도 피해 갈수 없는 통과의례입니다.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밝힌 자료는 없지만 1) 오래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 의례를 통해서 고대인은 하나가 되고, 의례에 참여하면서 행복해 합니다. 물론 논쟁도 있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도 자랑스러운 전통임에 분명합니다.

 

나는 사발식의 의미를 신입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사발식을 진행하기 전 먼저 FM 의식이 있습니다.

FM은 선배와 동료들에게 처음 하는 공식적인 자기소개로써 대학이나 과별로 정해진 형식이 있습니다. 때문에 FM은 이미 외부에서 ‘주어진’ 나의 정체만을 말할 뿐이며,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내가 어떤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싶은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형식이 강해져 의미가 식상해지면 FM은 군대식 관등성명에 불과합니다.

형식적인 자기소개일 뿐입니다. 중간에 다양한 몸짓과 개인기는 순간의 웃음거리로 치부됩니다. 이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FM을 통해서 고대생이라는 사회적 정체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과 합이 나의 정체는 아니며, 정체는 사회 속에서 실존을 추구하는 개인의 ‘자기정의(definition of self)'요 ’자기이미지(self image)‘입니다. FM이 원래의 의미대로 모범으로 삼아 가르치는 기본법칙을 다지는 의식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막걸리 사발식입니다.

교우들은 사발식을 거행하는 이유를 “획일적인 교육과 세파에 얽매인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진리, 자유,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자주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사발은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발은 독약을 담는 그릇도 됩니다. 잘못을 정죄하기 위한 의식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발은 정안수를 담는 그릇도 됩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담은 것이겠지요. 이렇게 보면 사발식은 정죄의 과정이며 기원의 의식이기도 합니다.

 

한편 그릇은 인간의 품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품성을 키우기 위해서 지성과 야성를 겸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마시면서 그릇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릇을 비우고 그릇 자체를 응시하고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최소 90살은 넘게 살 것입니다. 하루를 90년으로 환원하면 지금 여러분의 나이는 하루 중에서 새벽 4시 정도가 될 것입니다. 새벽 4시는 잠을 자면서 원대한 꿈을 꾸는 시간입니다. 꿈은 그릇입니다. 그릇을 채우기보다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로 그릇을 채우기 보다는 더디지만 느긋한 걸음걸이로 냉철한 이성의 머리와 뜨거운 감성의 가슴을 보다 멀리 보다 넓게 열어가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시작을 축하드리며, 소프트웨어를 단단 채우기보다는 그릇 그 자체를 키우는 공부를 하기 바랍니다.

류태호 교수(사범대 체육교육과) 고대신문 2011. 03. 02

 

1)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정운용 교수님에 따르면, 사발식의 출발은 1970년경으로 추정하며,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절, 시대의 고민을 껴안고 살아가야 했던 선배들의 고뇌에 대한 참여와 동조를 형상화한 의식으로,

    ‘그간의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